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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순서지와 설교 (8월 16일) 운영자 2020-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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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내용은 첨부파일을 참조하셔도 됩니다.

 

 

가정에서 드리는 주일 예배 순서

(2020. 8. 16 주일)

 

1.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 드리세요. (성경 앞쪽 두꺼운 첫 장을 참조하세요.)

 

2. 함께 찬양을 드리세요. (찬송가 288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3. 기도를 함께 드리세요.

     온 우주의 왕이시며 저희들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하오니 저희들의 경배를 통하여 온전한 영광을 받으시고 지난 한 주간 저희들이 지은 죄악과 허물들을 주님의 보혈로 다시 한 번 깨끗하게 하소서. 또한 이 예배가 살아 있는 영과 진리의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시고, 비록 저희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 선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의지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저희들만의 능력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 작은 바이러스조차 제어할 수 없습니다. 하오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저희 연약한 인류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고자 노력하는 분들을 도와주소서. 또한 모든 병들고 약해진 곳마다 치료하여 주시고, 모든 불안한 마음을 주님께 맡기게 하소서. 그리고 이런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와 저희를 향한 뜻을 더욱더 민감하게 통찰하는 기회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 주의 은혜로 대한민국을 사랑하시어 그동안 코로나 바이러스에 잘 대처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확진자가 완전히 없어지고 더욱 대한민국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나라 되게 하소서. 특별히 저희가 살고 있는 멕시코 땅에 확진자와 사망자가 늘어나고 생활과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능력의 하나님께서 이 땅 멕시코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저희 몬떼레이 한인교회 모든 성도들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 중에서도 안전하게 보호하여 주소서.

     하나님, 현재처럼 이렇게 어려운 상황일수록 더욱더 십자가의 복음을 자랑으로 여기며 살게 하시고,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 모든 고난들이 하루 속히 해결 되어 예배드리는데 어려움 없게 하시고, 각 나라에 있는 모든 교회 마다 주님의 사역이 온전히 회복되게 하소서. 특히 저희 교회가 교회에 모여는 예배가 회복될 수 있도록 주변 여건을 변화시켜 주소서. 오늘 드려지는 주일 예배가 살아 있는 예배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워지고 충만해지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감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 성경 말씀 (로마서 1:16을 함께 읽으세요.)

 

5. 설교 말씀 (첨부해 드린 설교 원고를 읽으세요.)

 

6. 함께 드리는 기도 (통성으로 각자의 기도 제목과 현 코로나 바이러스의 상황으로 기도 드리세요.)

 

7. 함께 찬양 드리세요. (찬송가 309목마른 내 영혼)

 

8. 헌금기도 (드려진 헌금을 위해 헌금 기도를 드리세요.)

 

9.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치세요. (성경 앞쪽 두꺼운 첫 장을 참조하세요.) 

 

 

 

주일설교 : 복음을 자랑하는 성도

로마서 1:16 (2020.8.16)

 

 

. 도입

   성경을 보면 사람들 마다 복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우선 첫 번째 태도는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대부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하지요. 해서 십자가의 복음을 우습게 여기고 무시해 버리는 겁니다. 두 번째 태도는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참 안타까운 현실인데요.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만드는 거지요. 교회에는 다니고 있지만 그 삶은 하나님 말씀과 영 거리가 멉니다. 자기 원하는 대로, 세상 방법대로 살아가지요. 그래서 교회 다니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마는 겁니다. 한 마디로 복음을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이지요. 반면 세 번째 태도는 십자가의 복음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담대히 전합니다. , 그 전한 복음대로 살려고 애씁니다. 그 과정에 때로 손해를 보기도 하고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기에 끝까지 믿음으로 지켜냅니다. 바로 오늘 본문을 기록하고 있는 사도 바울이 대표적이지요.

 

그럼 오늘 설교 말씀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내용

1.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

   우선 첫 번째 태도,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런 태도는 대부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16에 이렇게 고백하는 거지요.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복음이 유대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이방인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분명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굳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당시에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증거입니다. 그 중에 로마와 그리스인들이 대표적입니다. 그리스는 당시에 문명이 발달하고 학문이 발전한 곳입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던 그리스 사람들은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 사람들은 십자가의 복음을 하찮게 여겼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에 이렇게 선언하는 거지요.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만 전합니다. 그래서 유대인은 걸려 넘어지고 그리스인은 어리석다고 비웃지만 오직 십자가의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스스로 지혜 있다는 사람들, 자기 스스로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거절했던 겁니다. 물론 로마와 그리스 사람들이 볼 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그들이 볼 때 무식한 변두리 종교였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결코 화려한 궁전이나 귀족 집안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작은 동네 베들레헴, 그것도 말구유에서 태어났습니다. 더구나 로마인들이 가장 저주스럽게 생각하는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문화가 발달한 그리스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지 일번지인 로마에서 일어난 일도 아닙니다. 그저 식민지 나라인 저 변두리 이스라엘 땅에서 일어난 매우 하찮은 것입니다. 어디에 내 놓기에 부끄러운 이야기였던 것이지요.

 

둘째, 그들이 볼 때 부활 교리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더구나 성령의 잉태로 동정녀 몸으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는 삼일 만에 살아났다고 합니다. 당시 사람들도 나름대로 의학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여자 혼자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거지요. 더구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도무지 논리에 맞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 오직 십자가의 복음은 너무나 어리석게 보일 뿐입니다.

 

셋째, 기독교는 마이너리티라는 겁니다.

, 믿는 사람들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다수라는 거지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소수인 기독교를 무시하는 겁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다수에 포함 되어 있을 때 안전감을 느낀다고 하잖아요. 이에 관한 아주 재미있는 심리 실험이 있는데요. 신호등에서 빨간 불이지만 다수가 건너면 따라 건넌다는 겁니다. 또 피 실험자 열 명에게 색깔을 맞추는 실험을 합니다. 예를 들어 파랑색인데 나머지 아홉은 짜고 노란색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나머지 한명도 자신이 파랑색을 보고 있는데도, 다수를 따라 대부분 노란색이라고 대답한답니다.

 

사도 바울 당시 기독교는 소수인 마이너리티였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복음을 믿는다는 말을 주변에 쉽게 하지 못합니다. 더구나 어떤 지역에서는 복음을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을 당하기도 합니다. 당연히 복음에 대해 당당하지 못하고 숨기게 되는 거지요. 이런 3가지 이유 때문에 사도 바울 당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기독교를 부끄러운 종교라고 생각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심지어 교인들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믿음을 숨기는 사람들이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당당히 오늘 본문에,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선언하는 겁니다. 그러니 당시 이 편지를 읽은 성도 중에 가슴이 뜨끔한 분도 있었을 겁니다. 은연중에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성도도 있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저희들은 어떻습니까?

혹시 십자가의 복음이 부끄러워 믿는 걸 숨기고 있지는 않는지요? 혹시 부끄러워 식사기도를 숨기지는 않는지요?

믿는 우리가 복음을 부끄러워하면 세상을 복음으로 변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에서 내 자신의 신앙을 지켜 내기도 벅차게 됩니다. 당연히 직장이나 가정에서 복음으로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런 성도들이 많은 교회는 맛을 잃은 교회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와 여러분들은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2. 복음을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들

   그런데 이 첫 번째 태도보다 더 심각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복음에 대한 두 번째 태도인데요. 복음을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지요. 교회 스스로가 자기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 교계 돌아가는 소식을 들어보세요. 물론 여전히 훌륭하게 존경할 만한 영적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주님을 위해 참으로 헌신한 분들이 많지요. 그러나 가끔 유대 종교 지도자를 생각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혈통을 이어가는 제사장도 아닌데 대형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줍니다. 아버지를 이어 목사가 되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문제는 대접받고 기득권을 누리를 수 있는 자리를 세습하는 게 문제지요. 그래서 어떤 분은 말하기를 교회 세습이 다 문제는 아니라고 합니다. 전에 아버지가 섬기던 시골교회에 담임으로 간 아들 목사 뉴스가 났습니다. 이런 경우 누구도 교회 세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접 받는 대형 교회 담임목사 자리를 넘겨주기에 문제라는 거지요.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준 모 대형 교회 목사님이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목사들도 인간인지라 시기심이 있답니다. 그래서 후임 목사가 목회를 잘할 때 시기심이 난다는 거지요. 하지만 아들을 시기하는 아버지는 없기에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것이 죄를 짓지 않는 좋은 방법이라는 거지요. 얼핏 정말 그럴듯한 주장 같습니다. 그런데 어이없는 논리비약이지요. 그럼 아들한테 물려주지 않은 목사들은 죄를 짓는 건가요? 만약 시기심이 생기면 영적으로 싸워 이겨야 하지요. 물론 마음속에 있는 시기심을 쫓아내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님을 의지하여 싸워서 쫓아내야지요. 그런데 시기심과 싸울 생각은 하지 않고, 시기심을 부리지 않기 위해 아들에게 물려줘야 한다고요? 그러면 다른 성도들 역시 죄악과 싸워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자신은 시기심과 싸워 이길 생각은 안하고 교인들에게는 죄악과 싸워 이기라고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후임 목사가 목회를 잘해 교회가 부흥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후임 목사가 잘하도록 도와주면 되지요. 그러다 만약 시기심이 일어나면 영적으로 싸워야 하는 거고요. 그렇지 않아도 세상은 교회의 꼬투리를 잡지 못해서 안달인데. 이런 모습 때문에 결국 교회 스스로 복음을 부끄럽게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형 교회나 교계 지도자들만 복음을 부끄럽게 만듭니까? 아닙니다. 솔직히 저희 역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지 못합니다. 똑같이 아옹다옹 살아갑니다.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 기도 하고 교인들끼리 싸우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당합니다. 이런 일들이 바로 복음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와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성경책도 떳떳이 들고 다니고, 식사 기도도 확실히 해!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아니야!” 하면서 안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잘하시는 겁니다. 하지만 그 정도 했다고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혹시 나 때문에 복음이 부끄럽게 되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 모두는 복음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3.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

   세 번째 태도는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걸 바꿔 말하면 자신은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14에서 자신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한다고 고백 하는 거지요.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왜 십자가의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긴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 그 이유가 잘 나오는데 제가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복음이 유대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이방인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나오는 그것은 이라는 단어가 바로 이유를 설명해 주는 단어입니다. , 사도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복음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랍니다. 복음만이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유일한 구원의 방법이고, 길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구원을 위해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412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다른 어떤 이에게서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우리가 구원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인간의 선행이나, 우리의 능력이나 지혜를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누리는 부귀영화도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그러나 반드시 우리가 자랑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그러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복음을 자랑하는 저희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복음을 자랑한 사람은 당연히 자랑한대로 살아야 한다는 거지요. 자랑한 십자가의 복음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할 말 다하지 못합니다. 권리를 다 찾지 못합니다. 한 마디로 손해 보면서 살게 되는 거지요. 물론 그렇게 손해 보는 건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더 큰 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이걸 믿었던 다니엘은 다리오의 명령에도 창문을 열고 기도할 수 있었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풀무불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거지요. 그러니 혹 저와 여러분들이 복음 때문에 무시당하고 조롱을 받게 되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담대하십시오.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면서 꿋꿋이 복음대로 살아내십시오.

 

이에 관해 아주 좋은 실화가 있어 소개합니다.

경상도의 영주 중고등학교 교장을 지낸 강경훈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강 장로님이 젊은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일제침략 말엽에 보급대로 끌려가 채석장에서 강제 부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채석장의 하루 일과는 아침 일찍 일어나 점심까지 바위들에 구멍을 뚫고, 다이너마이트를 집어넣는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는 점심시간 바로 직전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돌을 부서뜨린 후,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돌을 나른다고 합니다. 그날도 오전 일을 마치고 여럿이 둘러 앉아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 때 강 장로님은 변함없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개 한 마리가 다가오더니, 기도하는 장로님의 도시락을 물고 가는 것입니다. 기도를 마치고 보니 개가 도시락을 물고 저만치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도시락을 찾으러 개를 좇아가는데 마치 장난치듯 멀어지면 서 있다가 가까워지면 또 도망치기를 반복하더래요. 사람들이 그 꼴을 보고 얼마나 조롱하면서 웃는지 모릅니다. 배고픈데 빨리 먹지 무슨 기도냐! 하나님은 기도하는 중에 도시락도 안 지켜주고 뭐하냐? 도시락 하나 못 지켜주는 하나님을 뭐 하러 믿느냐?” 온갖 말로 조롱을 하더랍니다. 그렇게 백여 미터를 훨씬 넘어 섰을 때 개가 도시락을 놓고 사라지더랍니다. 그래서 장로님이 도시락을 주어 돌아서는 순간, ‘하는 굉음과 함께 큰 바위가 부서져 내리더랍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오전에 바위를 뚫고 넣은 다이너마이트 중에 불발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게 그만 어쩐 일인지 점심을 먹는 중에 터지고 만 것입니다. 그 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안타깝게 죽고 말았습니다. 장로님도 개에게 빼앗긴 도시락을 찾으러 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복음을 자랑 스 럽게 여기고 무시하는 소리에 개의치 마십시오. , 기도한다는 이유로 조롱을 당하더라도 흔들리지 마십시오. 오늘은 보는 사람도 많은데 식사기도 하지 말까?’ ‘괜히 예수 믿는다고 했다가 손해 당할지도 모르는데 안 믿는 척 할까?’ 마음속에 유혹이 오더라도 더욱 당당해지십시오.

 

 

. 결론과 적용

   오늘 말씀을 통해 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세 가지 태도를 살펴보았습니다.

지금도 세상에는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더 심각하게 복음을 부끄럽게 만드는 교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사도 바울처럼 복음을 자랑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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